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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friday] 감기 '낳'으라는 톡, 그날 차였다

dooitsurvey 2018. 6. 15. 09:46

[cover story] 메신저·소셜미디어 소통 시대… 사소한 맞춤법 실수로 무참히 평가받는 '나'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 성인 95% "헷갈리는 맞춤법 있다"… 1위는 띄어쓰기, 2위는 되/돼

맞춤법은 기본이자 최소한의 예의… 인사 담당자 절반 "맞춤법 많이 틀린 지원자는 탈락"

'기호 ○번 ○○○, 믿고 맞겨 주세요!'

얼마 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으로 날아온 선거공보물을 살펴보던 직장인 김성민(38)씨는 실소했다. 후보의 경력, 공약마다 수두룩한 오타도 문제였지만 틀린 맞춤법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평소 맞춤법에 예민한 편은 아닌데 선거공보물이라서인지 눈에 확 띄더라고요. '믿고 맞겨 주세요'라는 후보에게 어떻게 일을 맡기겠어요?"

친구 주선으로 소개팅에 나갔던 직장인 박희선(28)씨. 활달하고 헌칠한 '소개팅남'과 저녁을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호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랫만에('오랜만에'가 맞는 말) 즐거웠어요. 푹 쉬고 얼른 감기 낳으세요(나으세요).' 소개팅한 남자가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감기를 낳으라니…. 지적으로 보였는데 환상이 깨졌어요."

무분별한 신조어와 줄인 말 사용으로 국어 파괴가 심각한 요즘, 기본적인 맞춤법마저 틀리는 경우도 허다해졌다. 하지만 '그깟 맞춤법 틀리면 어때. 의미만 통하면 되지' 하다 큰코다칠 수 있다. 사소한 맞춤법 실수 하나에 신뢰나 호감이 확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와 소셜 미디어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말보다는 글로 대화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문자화된 개인의 언어는 휘발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사소한 맞춤법 실수도 쉽게 널리 퍼진다. 자칫 무식한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우리말이지만 쓸 때마다 헷갈리고 어려운 게 맞춤법이다. '맞춤법 달인'이 되는 건 포기하더라도 '맞춤법 파괴자'는 면하고 싶다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

대학원생 김현아(29)씨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릴 때마다 헷갈리는 맞춤법을 검색하는 게 습관이 됐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누군가를 판단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사소한 맞춤법 실수 하나도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평소에도 맞춤법에 신경 쓴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 플랫폼 두잇서베이가 성인 남녀 38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평소 맞춤법에 신경 쓴다'는 응답이 69.7%였다. 신경 쓰지 않는다(9%)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최소한의 맞춤법은 지켜야 한다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쓴 이주윤 작가는 "영어 단어는 철자 하나 틀리는 것도 민감하게 굴면서 우리말 맞춤법 틀리는 일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건 문제"라며 "작가도, 편집자도, 국립국어원 직원도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맞춤법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신입 사원도, 부장님도 헷갈리는 맞춤법

입사 4개월 차 강민호(27)씨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상사에게 메일이나 문자, 결재 서류 속 틀린 맞춤법을 여러 번 지적받은 것. 자신감 잃은 신입 사원은 '맞춤법 검사기' 사용이 버릇이 됐다. 그러나 헷갈리는 맞춤법은 여전히 많다. "내일 뵈요(×)와 내일 봬요(○), 갯수(×)와 개수(○), 치루다(×)와 치르다(○)는 쓸 때마다 헷갈려요."

직장 생활 20년 차 부장님도 헷갈린다. '오늘 회식은 내가 카드로 결재(→결제)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오후 5시 전까지 결제(→결재) 서류 다 가져오도록!' 부장님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직장인 박수진(35)씨가 하소연한다. "부장님이 정작 하실 건 결재라고 몇 번을 알려 드려도 매번 틀려요. 그러면서 다른 직원들 맞춤법 지적하니 답답하죠."

맞춤법 헷갈리는 건 지위 고하, 나이 불문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성인 남녀 853명에게 평소 헷갈리는 맞춤법이 있는지 물었더니 95.1%가 '있다'고 답했다. 가장 헷갈리는 맞춤법(복수 응답)은 뭘까? 1위는 띄어쓰기(48%), 2위는 되/돼(43.3%)였고, 그다음은 이/히(24.2%), 왠지/웬지(20.1%), 던지/든지(18.7%), 않/안(15.5%), 존댓말(14.8%), ㅔ/ㅐ(11%), 맞히다/맞추다(9.7%), 낫다/낳다/낮다(9.6%) 순이었다.

지난해 국립국어원 국어생활종합상담실에 들어온 상담 건수는 23만건. 가나다 전화(1599-9979), 누리집 게시판, 카카오톡(@우리말365) 등을 통해 들어온 질문 상당수가 맞춤법에 관한 것이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8월 집계한 자료를 보면 가장 많은 질문 1위가 '되와 돼'의 차이였고 2위가 '에요/예요', 3위는 '받다/∨받다', 4위는 '못하다/못∨하다', 5위는 '로서/로써' 구별법이었다.

국립국어원 이운영 학예연구관은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검색만으로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헷갈리는 맞춤법에 관한 질문이 많다"며 "특히 띄어쓰기는 품사나 문맥, 의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우리말인데 맞춤법이 유독 어려운 이유

1988년 제정한 '한글 맞춤법'은 일부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뼈대가 됐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원칙 아래 국어 표기의 법칙을 규정하고 있다.

매일 쓰는 우리말이지만 유독 이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국어학자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는 "맞춤법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부터 맞춤법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기 때문에 맞춤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맞춤법 자체에 예외 규정이 많아 일반인이 배워서 익히는 데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맞춤법에 대한 관심도 문제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대부분 틀리는 맞춤법을 또다시 틀리곤 하는데 그걸 모르고 실수를 반복한다"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자신이 무엇을 틀리는지 제대로 알기만 해도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인이 어려워하는 맞춤법.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들은 어떨까? 언어권마다 차이는 있지만 외국인들에게 헷갈리는 건 따로 있다. 일본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아이케이브리지 외국어 학원 류지영(35) 강사는 "일본인 학습자들은 띄어쓰기나 맞춤법 실수는 비교적 적은 편"이라며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확한 어법을 학습하고 보고 쓰면서 그대로 외워서 체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댓말이나 발음 규칙, 조사, 시제 실수가 오히려 더 잦다.

맞춤법은 경쟁력이다

맞춤법을 틀렸다가 결정적인 순간 후회할지도 모른다. 좁은 문 통과해야 하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인사 담당자 733명에게 설문한 결과 '서류 전형 평가 합격 수준인 지원자라도 맞춤법이 틀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3%가 '오타 등 단순 실수는 감안하고 합격시킨다'고 답했지만, '여러 차례 맞춤법이 틀린 경우 평가 결과가 좋더라도 탈락시킨다'(40%), '무조건 탈락시킨다'(4.7%)고도 했다. 맞춤법이 틀린 지원서가 주는 인상에 대해 '부주의해 보인다'(43.9%) '기본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업무 능력에 의심이 생긴다'(41.8%)고 답했다.

이성에 대한 호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성인 남녀 853명에게 '맞춤법을 틀리는 이성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하고 물었더니 10명 중 8명이 '호감이나 신뢰도가 떨어진다'(78.9%)고 답했다.

맞춤법도 경쟁력이다. 회사에서 '맞춤법 요정' 소리를 듣는 웹 디자이너 이현진(27)씨. 맞춤법 검사기만 써도 실수를 대부분 거를 수 있지만 틈틈이 국어사전을 찾거나 책을 자주 읽는다. 이씨는 "맞춤법을 꼼꼼하게 챙기니 일할 때 실수가 적다는 인상을 주더라"며 "회사나 거래처에서 일을 믿고 맡기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쓴 이주윤 작가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끼고 산다. 느낌으로는 아는 단어인데 사전적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의외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맞춤법은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찾아보거나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작가라면 직업적으로 당연히 맞춤법을 제대로, 완벽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작가에 대한 신뢰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맞춤법 제대로 쓰겠다고 두꺼운 종이 사전을 일일이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검색 한 번이면 원하는 답 얻을 수 있고 포털 사이트는 물론 한글이나 워드 등의 문서 프로그램, 취업 포털, 블로그에도 맞춤법 검사기를 쓸 수 있게 된 만큼 조금만 신경 쓰면 실수는 줄어든다.

틈틈이 맞춤법 퀴즈에 도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네이버의 '알쏭달쏭 우리말'과 '올바른 띄어쓰기'가 인기다. 두 보기 중 맞는 표현을 고르면 된다. 퀴즈로 쉽게 헷갈리는 맞춤법을 점검하고 잘 몰랐던 맞춤법을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어의 품격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주부 성시현(38)씨는 얼마 전 아들의 카카오톡 채팅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창엔 엉터리 맞춤법, 줄인 말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일상이 된 초등학생들은 유튜버들이 쓰는 유행어나 자막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경우가 많아요. 외국어, 욕설도 섞여 있는 데다 맞춤법 틀린 게 많은데 틀린 줄도 모르고 그냥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워요."

최근 일부 초·중등학교 가운데 혐오, 비하 표현이나 욕설 등을 금지어로 정해 교실에서 쓰지 못하게 하는 학급이 늘고 있다. 그러나 또래 집단이 쓰는 언어를 무작정 규제하기란 쉽지 않다. 유튜브 유행어뿐 아니라 무분별하게 쓰는 '급식체(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10대들이 쓰는 은어)'나 줄인 말, 신조어 사용을 막을 방법도 사실상 없다. 심지어 방송에서조차 틀리는 표기를 자막으로 내보내기도 하고 오락 소재로 사용돼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맞춤법 파괴를 넘어 한국어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우리가 쓰는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의 인격과 수준, 나아가 국민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며 "우리 언어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진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리말 체계를 정립해 보급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말의 기본이 되는 맞춤법부터 돌아보자. 맞춤법은 기본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 우리의 품격이다.

[강정미 기자 har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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