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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단독①] 배우A "필리핀 성폭행, 아내가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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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단독①] 배우A "필리핀 성폭행, 아내가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

dooitsurvey 2018. 2. 21. 10:54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양형기준제도' 

범죄의 경중과 범인의 전과에 따라 미리 정한 형의 범위에서 형을 선고하는 제도를 말하며 국내에서는 200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설립을 시작으로 도입됐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기준제 도입 후 10년간, 살인과 성범죄 등 38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설정됐고, 최근 5년간 재판에서는 평균 89.7%가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판사들이 90%에 가까운 비율로 양형기준이 권고하는 범위 내에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양형기준제의 운용 목적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양형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판사들의 양형기준에 대한 준수율이 높더라도, 그 양형기준 자체에 대해 국민의 법 감정 또는 공감대가 '부당하다'에 맞춰져 있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1일, 출범 10주년을 맞아 '양형위원회 10년의 성과와 주요과제' 학술대회를 열었다. 

초기 양형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손철우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이날 양형에 대한 국민 법감정이 괴리됐다는 일각의 비판에 부정적인 견해를 전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들이 평균 78.8%로 높은 양형기준 준수율을 기록했지만, 그중 양형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배심원들의 경우 폭력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 군에서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 범위보다 더 낮은 양형 의견을 제시하는 '하한이탈'을 보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5명 중 4명의 국민참여 재판 배심원들이 '양형기준 내의' 형벌을 정했고, 기준을 이탈한 배심원의 경우 오히려 더 낮은 형벌을 정했다는 의미. 

손 판사는 이날 "특히 국민의 공분을 자주 유발하는 성범죄의 경우에도 배심원들이 양형기준보다 더 낮은 양형 의견을 내놓는 비율이 92.1%에 달한다는 점에서, 양형위가 그동안 설정한 양형기준이 양형에 관한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나 법감정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성범죄자 양형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법감정은 과연 손 판사의 분석대로 일까.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무른 양형기준' 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 성범죄자 조두순에 대한 출소반대 청원에는 총 60만 명이 참여했다. 국민의 공분을 산 '조두순 사건' 외에도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은 '관대하다'는 여론이 드세다. 


온라인 설문조사 시스템 두잇서베이가 2016년 5월 4일부터 5월 11일까지 전국 10~99세 남녀 42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9%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도가) 약한 편'이라고 답했고, '강한 편'이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4.4%에 불과했다. 또한, 대검찰청이 2015 발표한 범죄분석 현황을 보면 (2015년 기준) 최근 10년간 성범죄 발생 건수는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도 손 판사의 분석을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여기 한 배우가 있다. 

그의 아내는 지난해 1월, 필리핀 휴가 중 강간미수라는 성폭력 범죄를 당했다. 가해자는 남편의 18년, 아내의 10년 지인. 판결문에 기록된 사건 당시의 세세한 정황은 차마 기사에 옮길 수 없다. 

가해자는 1년 후인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선고 다음 날, 사건은 [단독] 유명배우 A 아내 B 씨, 외국서 성폭행 피해…라는 제목과 함께 한 언론사에 의해 보도되었고, 당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필리핀 성폭행', '필리핀 성폭행 배우'였다. 

기사에는 피해자인 A 씨와 B 씨의 신원을 손쉽게 특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담겨 부부의 2차 피해가 시작됐다.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 버젓이 실명이 올랐고, 이를 지우려는 부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명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보름이 지난 후, A씨가 스포츠조선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는 종신형, 가해자는 집행유예"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3차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대한민국 사법부와 언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만남을 자청했다. 


▶ 먼저 전체 사건의 정황을 간략히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 가해자는 저와 18년 지인 사이입니다.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죠. 제가 아내와 10년 전쯤 연애를 시작했으니, 아내 역시 여자친구이던 시절부터 그 지인(가해자)은 물론 그 부인과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자주 만나기도 했고,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게 다른 지인들로 구성된 작은 모임이 있는데, 그 중 몇 명이 필리핀의 작은 골프장의 회원이어서 매년 겨울마다 7박, 8박 정도로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마침 그해(2016년)에 A씨가 필리핀 현지에서 음식점 사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련해 둔 집 (2층집) 에 아내와 딸을 함께 데리고 가서, 그의 집에 머물며 딸 공부(단기)도 시키고, 아내와 저도 휴가를 즐기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내의 친구도 함께 갔고요. 앞서 보도되기로는 어린 딸이 유학 중이고, 아내와 제가 기러기 부부인 뉘앙스로 쓰였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름을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필리핀으로 가서 생활하던 중, 아내는 저와 지인(가해자)의 아내가 외출로 집을 비운 사이, 가해자로부터 변(강간 미수, 2017년 1월)을 당했습니다. 


< 정황 설명 생략 > 


제가 집을 비웠을 때 (변을 당하기 전) 가해자가 아내의 친구까지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모든 시아버지가 사실 며느리를 여자로 보며 성관계하고 싶어하지만 참는 것일 뿐' 같은 말이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고 후, 가해자는 황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저는 일단 그 집에서 짐을 빼 아내와 딸을 근처 리조트로 데리고 왔습니다. 가해자가 한국으로 갔으니 한국으로 가는 게 두렵다는 아내의 말에 일단 현지 리조트로 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가해자가 다시 필리핀으로 와서 '죽을죄를 졌다'며 문자가 왔습니다. 리조트 앞으로 찾아왔다고도 연락이 왔고요. 그런데 도저히 이성적으로 그를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흥분하여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엄습해 왔습니다. 결국, 만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경찰서에 신고했고, 1년이 지난 얼마 전 (2월 1일) 가해자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 아내는 약 1년 전, 성범죄를 당해 1차 피해를 받았습니다. 이후 지옥과 같은 1년을 보냈고, 가해자는 검찰 구형량이 징역 3년이었음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2월 1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고 공판 다음날 새벽, 한 언론사가 선고 결과를 토대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단독] 유명배우 A 아내 B 씨, 외국서 성폭행 피해…였고, 내용에는 피해자인 제 아내 'B'와 그 남편인 저, 'A'가 누구인지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심각한 수준의 2차 피해를 보았습니다. 

같은 날 가해자는 판정에 불복, 항소하였고, 알아본 바로는 2심에서는 1년 6월의 실형보다도 낮은 형량인 집행유예로 감경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언론은 '성범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 기관' 입니까. 성범죄에 관대한 대한민국, 비인간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 3차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목소리를 내고자 언론사 인터뷰를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 기사에 어떻게 담겼나요. 

-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누구든지 (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 매체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폭력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신원이 공개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특정될 만한 어떠한 정보도 기사에 담겨서는 안 됨을 의미합니다. 아마 기사에서 우리 부부가 특정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러한 인터뷰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에는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고 오로지 피해자의 신원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저와 피해자이자 일반인에 가까운 제 아내에 관한 나이, 이력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표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 딸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일반인이라 '특정'되기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지 '박 모 씨'라고만 표기되어 있으며, 나이는 무려 10살가량 잘못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기사에 쓰인 제 아내와 저에 대한 설명 글은 그 전체 길이의 10%만으로도 우리가 누군지를 알 수 있음에도 몇 배나 더 자세한 설명을 넣은 것입니다. 기사에는 또한 '피해자 A 씨와 B 씨는 1일 선고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론사명]은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A 씨와 B 씨 측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문구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피해자의 피해자 신원을 그렇게까지 알리고 싶으셨습니까? '의도치 않게' 특정돼버린 상황이라고도 볼 수 없을 만큼 세세하며 지나치게 설명적이었기에 우리는 분노 이상의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분노 이상의 궁금증이란 무엇입니까. 

- 기사화의 배경과 목적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주변의 아는 기자분들에게도 문의했습니다. 단순 사실 보도가 목적이라면 피해자 신원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기록할 이유와 필요가 전혀 없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선고 공판이 있기 전날 저녁(2016년 1월 31일), 즉 기사화되기 이틀 전. 제 휴대폰으로 모르는 번호와 함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평소 (연예인 신분상) 모르는 번호를 잘 받지 않았기에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안방에 있던 아내가 (같은 번호의) 전화를 받으며 제가 있는 거실로 나왔습니다. 배우인 제 번호를 아는 기자분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일반인'에 가까운 아내의 번호까지 아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이후로는 스피커폰을 통해 함께 들었습니다. 통화 내용은 "XXX 씨 맞으시죠"라고 묻기에 아내가 "맞는데 누구시죠"라고 했고, 상대는 본인이 여주 지방의 한 언론사 기자라고 말하며 "다름이 아니라. 제보가 들어와서 확인 차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일이 성폭행당하신 부분에 대한 선고일이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주는 가해자의 한국 거주지이기 때문에 (필리핀은 임시 거처) 그 지역 언론사 기자의 갑작스러운 전화는 분명히 의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에 상기된 아내가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느냐"고 묻자, 상대 기자는 얼버무리며 대답을 회피했고, 그때 아내가 '혹시 가해자 측에서 제보한 것이냐'고 불쑥 묻자, 기자는 답변을 얼버무리며 "선고 관련해서 인터뷰하고 싶어서 연락드린 것인데, 남편분이 XXX 씨 맞으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게 왜 궁금하시냐, 나는 피해자이고, 기사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하고 끊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그 번호로 이번에는 제게 문자와 와서, XXX 언론사 XXX인데,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고, 제가 문자로 답했습니다 

'아내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제 아내는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인데, 무슨 이유로 인터뷰를 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어떤 분에게 제보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해자 측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 같은데, 만약 우리 부부에 관련된 기사를 내시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보냈습니다. 

선고 전날 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재판 진행 상황도 상세히 알 수 없음에도 피해자와 그 남편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소속사도 아닌 본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리고 다음 날 선고 (징역 1년 6월 선고)가 있고 난 뒤, 그다음 날 새벽에 (전화 온 기자의 언론사가 아닌)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가 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건의 특성상 언론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사안이 아닌, 당사자 중 누군가의 명백한 제보가 있어야만 언론에서 알아낼 수 있는 사안인 데다, 여주 언론사 기자가 선고 전 했던 질문들과 뉘앙스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내용의 기사가 타 언론사로부터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보도된 기사를 본 직후 아내의 첫 말도 "그 기자(전화가 왔던)가 알려줬네" 였습니다. 


▶ 그러한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 기사에 포함된 문구들이 가해자가 합의종용·협박·수사 과정에서 줄곧 주장하던 때의 말투, 단어들이 고스란히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가해자는 저희를 향해 '나이가 매우 어린 딸을 엄마와 함께 유학을 보내놓고, 기러기로 방치한 남편'으로 몰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수사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저러한 의도를 가지고 임했고요. 그런데 기사에도 가해자가 그때마다 쓰던 단어들로써 아내가 딸과 함께 유학을 가 있다가 남편의 지인에게 변을 당한 것처럼 쓰였습니다.

실제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와 아내, 딸, 아내의 친구까지 다함께 여행을 간 것이고, 겸사겸사 현지에서 딸에게 단기 교육도 받도록 한 것이거든요. 큰 차이가 아니라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가해자의 말, 제보로써 이 기사가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아내는 (기사의) 일부 댓글 중에 '그러게 왜 어린 애를 유학을 보내냐, 위험하게', '기러기부부는 이래서 위험하다'와 같은 내용들을 보며 매우 속상해 합니다. 가해자의 의도처럼 어딘가 모르게 '방치한', '피해자지만 어느 정도 처신을 잘 못한'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혼자 집에 있던 B' 라는 기사 내부 문구도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사고 당시 집에는 아내와 아내의 친구, 제 딸 포함 3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 만약 가해자가 아는 기자, 언론사를 통해 부부를 압박을 하려 했다면, 왜 '선고 전날' 이었을까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압박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 선고 전날에만 압박이 있었던게 아닙니다. 사건 후 지속적으로 합의종용과 협박이 있었습니다. 또한 1심 선고로 끝이 아니고 항소와 2심까지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압박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내의 남편인 제가 연예인인 점을 이용해 합의를 끌어내려는 시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1심 선고가 있기 한참 전, 가해자도 알고 저도 아는 한 지인분께 전화가 왔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네 딸도 좀 보고 싶고, 너의 집 근처에 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집으로 초대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니와, 사실 불쑥 연락해주셔서 따로 만날 만큼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가해자의 부탁을 받은 방문' 이라고는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설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그 지인에게 범행사실을 털어놓고, 합의 제안을 부탁했을 리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죠. 

다소 의아했지만, 집앞으로 오셨다기에 집으로 모셨습니다. 아이를 재운 후,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참을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지만, 아내가 당한 일을 들었다"고 말했고,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쓰X기 같은 놈, 어떻게 네 아내에게 그럴 수 있느냐"면서 가해자를 욕하더니, 이야기 말미에는 "그래도, 너가 연예인 신분이니 조용히 합의 보는 게 너에게 이득이다. 나중에 알려져서 너에게 좋을 게 뭐가 있냐"라고 했습니다. 제가 "절대 합의 볼 생각은 없다"고 했더니 "만약 너가 합의를 안해주고, 형을 받는다면 그 놈은 너에게 X물이라도 튀기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혼자는 안죽겠다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탁받고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X물이라도 튀기겠다'는 말에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합의점을 찾을 까말까, 한데, X물을 튀기겠다는 사람과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합의를 보느냐'고 했더니 "그럼 본인이 정말 잘못을 인정하면 받아줘라"라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가해자의 아내가 문자나 전화를 통해 연락을 해 왔습니다. 집 앞으로도 찾아오며 '만나자',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아내와 가해자가 검찰에서 대질 심문을 받는 날 이었는데, 가해자는 많은 성범죄자들이 흔하게 하는 말, '합의 하에 (성관계를)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원래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말까지 있었죠. 아내는 치를 떨었고, 대질심문을 마치면서 가해자는 검사한테 "웬만하면 나도 조용히 돈 몇 푼주고 끝내려고 변호사 선임조차 안했는데, 나도 선임을 해야겠다"라고 하더군요.


▶아내 분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요.

- 아내는 사건 이후 오랜시간 잠을 못 이뤘습니다. 특히 사건 직후에는 매일 새벽까지 잠을 못 잤습니다. 잠을 자면 늘 악몽을 꾸기에, 잠에 드는 것 자체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들려준 꿈의 내용이 너무나 '디테일'해서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가해자가 화장실 환풍구와 같은 곳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는 꿈', '중국 칼 (칼의 면적이 넓고 무시무시한)을 든 누군가가 그것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꿈'을 '레퍼토리'처럼 매일같이 꾼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남편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심지어는 그 내용을 들은 저조차 악몽을 꿨습니다.

아내는 늘상 '당한건 나인데,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인기피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1년을 보낸 후 기사가 나갔고, 우리 부부가 특정된 후에는 2차 피해가 시작됐습니다. 

(기사가 보도된) 당일 아침, 아내는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기 위해 집을 나갔고, 제가 먼저 집에서 그 기사를 봤습니다. 이후 아내가 집에 돌아왔고, 아내는 (기사를 본 후)"우리 이제 어떡하냐"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그 아이러니함에 온몸이 떨렸습니다. 왜 피해자인 아내와 그 남편, 딸이 이렇게 보호받지 못한 채 '어떡하냐'라며 두려워해야 하는지. 우린 숨이 막혀 집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밥을 먹으려 하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아내라도 먹이기 위해 밥을 떠먹여 줬습니다.그러다가 도저히 집에 있기 힘들어 '강원도로 가자'고 했습니다. 창밖에서 누군가 카메라로 '피해자'인 우리를 찍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들면서, 나가는 길에 커텐을 다 쳐놓고는 아이를 태워 양양으로 갔습니다. 

그날의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하루 종일 '필리핀 성폭행' 이었고, 모자를 쓴 아내는 강원도에서도 호흡곤란으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숨이 안쉬어지니, 나가자'고 하기에 숙소로 왔는데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습니다. 양양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사람이 없는 '인기 없는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우리가 죄인이 아닌데 이렇게 지내면 안된다'며 위로 했지만, 아내는 '이민가고 싶다. 이게 나라냐'고 했습니다. 왜 피해자인 자신은 평생을 고통받는데, 가해자는 고작 1년 6월에,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예상되냐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검사들이 (많은 수가) 남자라서 그런거야?' 라고요. 


▶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 가해자에대한 검찰의 구형량은 징역 3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범이라는 이유로 무려 절반으로 감형되었습니다. 

도대체 성범죄자에 대한 '감형의 요소'는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요. 미수 이니까 '참작', 초범이니까 '감형'…가해자는 진정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지 않으면서도 악어의 눈물처럼 형식적으로 반성문을 작성하여 재판부에만 제출합니다. 

또한 자신과 가까운 지인에게서 감형을 구하는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 제출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사죄를 받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거짓말을 하며 공탁금을 걸면, 그것을 감형의 참작요소로 봐주는 현실을 보면 사법부가 마치 죗값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까지 보입니다. 

상대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자, 우리보다 먼저 '양형 부당' 등으로 항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고를 받은 다음날이었죠. 그는 말 그대로 '1년6월은 과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양형의 기준은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정량적이며, 피해자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딱딱한 '공식'처럼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미수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강간을 위해 실랑이를 벌여도 미수, 중요신체 부위를 만져도 미수, 그 이상도 미수로 판단합니다. 

사고를 당한 후, 주변에 아는 변호사, 지인이 아는 변호사 등에게 여러 차례 우리 사건에 대해서 자문을 구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분들의 답변은 일률적이었습니다.

대부분 자세한 내막을 듣지 않고도 하나같이 "그 정도면 1년 반 정도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정말 '딱' 그렇게 선고결과가 나왔습니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과 사건의 내막도 없이 마치 불법주차 티켓을 받듯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그 주변 법조인들이 1심 선고 후, 예상하고 있는 2심(항소심) 선고결과는 '집행유예' 입니다. 즉 그가 석방될 예정이라는 예상입니다.

만약 가해자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온다면, 저는 아내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제 딸도 여성입니다. 피해자는 종신형, 가해자는 집행유예 입니까. 관에 들어갈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에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는 감옥이 아닌 사회에 버젓이 나와 'X물을 튀기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사법부에 대한 불만은 무엇인지요.

- 제가 사법부에서 발견한 것은 여전히 만연한 남존여비 사상 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어떤 원인을 제공했으니 벌어지는 일 아닌가'라는 생각을 품곤 하는 것이 바로 그것 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세종대왕은 1426년 유아를 강간한 자에게 교수형을 내렸습니다. 실록을 보면 강간미수범에 대해서도 교수형을 내리며 엄격하게 처분했습니다.

그 후손인 우리는 현재 어떻습니까. 성 범죄자에게 지나칠 만큼 관대한 나라. OECD 국가 중 성범죄 발생률과 재범률은 상위권은 늘 대한민국의 차지 입니다.


▶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요.

- 2월 5일 항소했고, 최초 보도 언론사를 고소할 예정입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최초 보도 기사를 본 후, 인터넷 커뮤니티나 개인 블로그, SNS 등에 부부의 실명을 거론하여 2차 피해를 양산하는 행동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입장을 고려하여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속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부득이하게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점,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우리 가족이 평상시로 돌아가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 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우선되어야 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아내가 변을 당했을 때, 제 딸은 2층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외출 중이었고요. 남편으로서 죄책감이 듭니다. 가해자는 제 지인, 즉 아내에게 그는 어쨌든 '나로 인해 알게된 사람' 아니겠습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것이라면 잊기가 비교적 쉬웠을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게도 10년이라는 그와 관련된 추억 아닌 추억이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아니 '잘린' 우리 부부는 쉽게 그 상처를 잊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 피해자가 죄책감을 가지는 나라. 한 인간의 삶과 그 가정을 파괴해놓은 가해자에게 관대한 나라. 막상 제 아내가 당하기 전에는 '남의 일' 정도로만 가끔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문제였던 점, 인정합니다.

그런데 제 아내 뿐 아니라 피해자이면서도 숨어 지내야 했던 대한민국의 많은 피해자들과 함께 이 부당함을 토로하고 싶습니다.


ssale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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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1: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217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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